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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is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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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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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판단.

Photo by Ekaterina Bolovtsova on Pexels.com

DS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대화 즉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이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많다. 그러나 그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대부분의 섭들은 돔에 의해서 끌려가기 마련이다.

그 끌려가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본능에 눌려버린 이성적판단의 결여때문인데 분명한것은 DS도 인간관계의 한 부분이긴 한데 이 DS의 중요한 포인트중에 하나가 바로 본능의 개입이다. 그렇다보니 D는 S의 본능적인 부분을 계속 건드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S들은 그 본능때문에 이성적판단의 개입자체가 결여되어 이끌려가게 되는것이다.

옛 속담에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돌려 말하면 본능은 잠시 내려두고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한다면 본능에 눌려 결여되어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DS기간이 잠시일지라도 그 잠시가 서브에겐 아주 치명적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즐기지 뭐? 라는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SM을 접기를 바란다. 뭐 접을수는 없겠지만.

SM은 여러모로 단순하지 않는 성적성향이며 취향이자 성라이프스타일이다.

혹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SM은 단순하지 뭐… 때리고 맞고 흥분하고….. 쉽다…. 말은 정말 쉽게 할수 있다. 표현도 마찬가지로 쉽게 할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인 내면은 정말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현명한 이성적판단으로 결정해야 하는것이다.

새디즘이나 메저키즘이 발현되고 스스로 성정체성을 확인한후에 과연 그 정체성을 잠재우고 살수 있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통제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어떤것이 옳다 그르다, 나쁘다, 잘못되었다 라고 그 누가 판단해 줄수 있나? 없다. 그 판단의 몫은 결정의 몫은 오로지 내 자신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몫도 당연히 내 몫이 되는것이다.

보편적인 가치관과 사회적인 통념이 정말 옳은것일까? 그것만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수 있나? 아니다. 사람의 삶은 다 각자의 가치관과 통념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 각자가 모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가치관과 통념이 되는것일뿐 그것이 올바르고 정의롭고 사람이 가야할 길은 아니란것이다.

즉 한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통념은 존중받아야 하고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각 개인의 자유를 대변하는것이고 또한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DS는 좀더 특별한 관계이며 좀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수평적인관계가 아닌 수직적인 관계설정이 되는것이며 그 수직적인 관계설정은 요즘 소위말하는 갑을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가 되는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DS에서 거부권도 있고 저항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거부권과 저항할수 있는 권리조차 무시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그것은 곧 내게는 피해가 될수 있고 나는 피해자가 되는것이다.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주종의 관계가 곧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가치관과 통념을 갖고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하면 나는 즉 피해자가 되는것이고 나는 가해자가 되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내가 하고자하는것과 상대가 하고자 하는것이 많은 부분 일치하고 또한 상대가 나를 어떻게 핸들링을 하게 되는지도 면밀히 대화를 하면서 살펴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본능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과 통념에 의해서 본능의 간섭이 없이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상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면 물어라 그리고 다시 물어라 내가 가진 의구심이 사라질때까지. 그래도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상대와는 더이상 그 무엇도 진행을 해서는 안된다.

의혹에 대한 해명의 수준이 아닌 그 상대의 진심을 진정성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것은 DS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될수 있는것이다.

친구라고 해서 나의 모든것을 다 알고 상대에 대해서 다 알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아닌 이상 나를 다 알수 있는 상대는 없다. 그게 나의 부모형제라 할지라도 나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내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다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 어불성설이다. 다른이들보다 조금더 알뿐이지 나를 다 안다고 말하는것은 바로 거짓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작정하고 속인다면 속을수밖에 없다. 물론 확인을 하고자 한다면 확인을 하겠지만 상대의 속임수를 눈치를 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 속임수를 눈치챌수 없을만큼 이미 그 상대에게 빠져버릴때가 많다. 이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것이며 또한 DS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중에 하나다.

상대의 속임수를 눈치챌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을 것이다. 있다. 그러나 알려줄수는 없다. 모든이에게 다 적용할수는 없는것이고 그 상대의 방법에 따라 다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

서브라는 포지션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였다.

DS를 전제로 만약 상대와 대화중이라면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깊은 대화를 하는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본능적인 부분에 치우쳐버린 대화는 이끌려가기 때문에 에셈적인것이 아니라도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대화를 하고 그리고 플레이 목적이 아닌 상대를 알기 위한 만남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 DS를 위한 대화중인데 관계설정도 안되었는 플레이를 목적으로 테스트플레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목적만남을 한다면 원한다면 그 관계는 미리 종료하는게 맞다. 내가 준비가 안되었는데 무슨 플레이가 되나? 그러나 소위 발정나서 참을수가 없다면…. 아이스버킷첼린지를 하길 바란다. 참을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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